설날 연휴가 시작하는 첫날이다. 여느때처럼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고향가는 길 네비게이션을 클릭하였다. 4시간 소요된다는 시간표가 뜬다. 길치인 나는 내 의지보다는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출발을 하였다. 카카오맵을 통하여 길 안내를 부탁을 하였다. 오늘은 중부고속도로가 아닌 경부고속도로를 타라고 길을 안내한다. 믿기로 하였다. 그런데 경부고속도로가 아닌 신갈 IC로 진출하라고 한다. 신갈 IC 진출 후 카카오맵이 말을 듣지 않는다. 길가에 차를 정차하였다. 티맵으로 전환하니 목적지까지 1시간 늘어난 5시간으로 늘어났다. 처음 가는 길로 안내를 한다. 안녕 IC를 거쳐 평택화성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1시간 이상 정체를 거쳐 아산 IC에서 진출을 하였다. 외암리 민속마을을 거쳐 도고면, 대술면, 신양면을 경유하여 길을 안내하는데 도대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을 하였다. 지방도는 원할하게 진행을 하였다. 유구에서 대전당진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탄천휴게소에서 주유를 하고 육개장으로 점심 식사를 하였다. 휴게소는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 육개장이 왜 그렇게 짠지 국물은 제외하고 밥에 말아 식사를 마쳤다. 함께 앉은 식탁의 가족들을 보면서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보니 군포에서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여 전주까지 간다고 한다. 함께하는 가족들이 부럽다. 점심 시간 포함하여 아침에 출발하여 6시간만에 고향집에 도착을 하였다. 부모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곳엔 부모님은 안계시다. 형님과 형수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시간과 세월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고향엔 어렸을적 친구들이 많지 않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때는 1600~1800명 정도 학생수가 있었던 90년의 역사를 자랑하였던 학교였는데 아이들이 없다보니 폐교를 하고 이웃 학교에 통합을 하였다고 한다. 학교 앞에 있는 친구의 집을 방문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친구와 악수를 나누었다. 두산그룹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하여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까지 대접하는 친구가 고맙고 감사하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친구는 밥도 짓고 반찬도하여 부모님을 모시는 효자이다. 친구의 부모님은 아들이 함께 하는걸 은근히 자랑을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친구가 부럽다. 캄캄한 밤에 나홀로 초등학교 교정을 걸어본다. 그리고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운 교실, 운동회 때의 모습들이 스크린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의 젊었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낙엽만 밟게 되었다.
고향집에 와보니 낮선 아이들이 머뭇머뭇거린다. 새아를 반갑게 안아주고 이름을 물어보니 새아, 새준이라고 한다. 인천에서 왔는데 형수님의 손자, 손녀다. 새아는 다섯살, 새준이는 세살이다. 새아는 유치원에 다녀서 그런지 다정하게 다가와 품에 안긴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긴다. 새준이는 아직은 낮가림을 한다. 친해보려고 노력을 하였다. 여전히 가까이 하지 않는다. 저녁 식사를 하고 새준이가 먹던 젤리를 가지고와 나에게 전달한다. 고맙다고 칭찬을 하였다. 그래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설날 연휴가 시작하는 첫날이다. 여느때처럼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고향가는 길 네비게이션을 클릭하였다. 4시간 소요된다는 시간표가 뜬다. 길치인 나는 내 의지보다는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출발을 하였다. 카카오맵을 통하여 길 안내를 부탁을 하였다. 오늘은 중부고속도로가 아닌 경부고속도로를 타라고 길을 안내한다. 믿기로 하였다. 그런데 경부고속도로가 아닌 신갈 IC로 진출하라고 한다. 신갈 IC 진출 후 카카오맵이 말을 듣지 않는다. 길가에 차를 정차하였다. 티맵으로 전환하니 목적지까지 1시간 늘어난 5시간으로 늘어났다. 처음 가는 길로 안내를 한다. 안녕 IC를 거쳐 평택화성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1시간 이상 정체를 거쳐 아산 IC에서 진출을 하였다. 외암리 민속마을을 거쳐 도고면, 대술면, 신양면을 경유하여 길을 안내하는데 도대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을 하였다. 지방도는 원할하게 진행을 하였다. 유구에서 대전당진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탄천휴게소에서 주유를 하고 육개장으로 점심 식사를 하였다. 휴게소는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 육개장이 왜 그렇게 짠지 국물은 제외하고 밥에 말아 식사를 마쳤다. 함께 앉은 식탁의 가족들을 보면서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보니 군포에서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여 전주까지 간다고 한다. 함께하는 가족들이 부럽다. 점심 시간 포함하여 아침에 출발하여 6시간만에 고향집에 도착을 하였다. 부모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곳엔 부모님은 안계시다. 형님과 형수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시간과 세월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고향엔 어렸을적 친구들이 많지 않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때는 1600~1800명 정도 학생수가 있었던 90년의 역사를 자랑하였던 학교였는데 아이들이 없다보니 폐교를 하고 이웃 학교에 통합을 하였다고 한다. 학교 앞에 있는 친구의 집을 방문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친구와 악수를 나누었다. 두산그룹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하여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까지 대접하는 친구가 고맙고 감사하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친구는 밥도 짓고 반찬도하여 부모님을 모시는 효자이다. 친구의 부모님은 아들이 함께 하는걸 은근히 자랑을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친구가 부럽다. 캄캄한 밤에 나홀로 초등학교 교정을 걸어본다. 그리고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운 교실, 운동회 때의 모습들이 스크린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의 젊었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낙엽만 밟게 되었다.
고향집에 와보니 낮선 아이들이 머뭇머뭇거린다. 새아를 반갑게 안아주고 이름을 물어보니 새아, 새준이라고 한다. 인천에서 왔는데 형수님의 손자, 손녀다. 새아는 다섯살, 새준이는 세살이다. 새아는 유치원에 다녀서 그런지 다정하게 다가와 품에 안긴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긴다. 새준이는 아직은 낮가림을 한다. 친해보려고 노력을 하였다. 여전히 가까이 하지 않는다. 저녁 식사를 하고 새준이가 먹던 젤리를 가지고와 나에게 전달한다. 고맙다고 칭찬을 하였다. 그래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기다려야 할 것 같다.